일본 유산 무라카미 해적
"습격과 약탈"보다 오히려 "많이 지켜주었다".
무라카미 해적은 이 지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소중하고 평온한 일상생활, 지방영주에 버금가는 우아한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세토내해의 자연경치를 무엇보다 잘 지켜왔습니다.
무라카미 해적의 발자취를 탐방하는 여행은 일본사람들이 마음속에 간직해온 그 무언가를 찾아 다니는 여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세토내해에서는 해적들이 있었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당시 "일본사(Historia de Japam)"를 저술한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일본최대의 해적"이라고 형용한 무라카미 해적입니다.
그들은 강제로 선박을 강탈하여 금품을 약탈하는 '파이리츠(Pirates)'가 아닙니다. 규범에 따라 선박들의 안전한 항해를 담보해주며 세토내해 교역 및 유통 질서를 지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해적의 근거지인 게이요 제도는 수많은 섬들이 빽빽이 밀집해 있습니다. 세토내해의 바다 경치는 평온하게만 보이는데, 좁은 해협으로 배가 진입하다가는 거센 조류가 가차없이 배를 삼키려고 밀려옵니다. 먼 옛날부터 뱃사람들이 애로를 겪어오던 곳입니다.
그래서 당연하게 세토내해를 손금 보듯 아는 무라카미 해적의 능력이 필요했으며 그들은 근거지라는 이점을 살려서 세토내해를 장악하는 패권자가 됐습니다.
무라카미 해적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일본 남북조 시대이며 선박들을 지켜주는 약소세력에 불과했으나 나중에 게이요 제도 전역을 장악하는 막강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라카미'라는 성씨를 가진 3개 가문의 강한 동족의식입니다. 3개 가문들은 서로가 나름대로 '바다의 성'인 해성을 지었는데, 인노시마섬 무라카미 가문은 혼슈섬측 항로를, 노시마섬 무라카미 가문은 세토내해 중앙해역을 지나가는 최단항로를, 구루시마섬 무라카미 가문은 시코쿠섬측 항로를 각각 장악했습니다. 해성을 항로 중요지점에 배치함으로써 해상전에 대비할뿐만 아니라 해상 관문 구실로 세토내해 동서를 연결하는 교통망을 지배한 것입니다.
루이스 프로이스 일행이 안전한 항해를 부탁하자, 무라카미 해적은 "수상한 배를 만나게 될 때 보여주면 된다"며 가문마크가 실린 비단깃발과 서명을 건네주었습니다. 나중에 "과소선기(過所船旗)"라고 불리게 된 통행허가증인데, 무라카미 해적은 그 깃발 대여와 뱃길 안내 역할로 지방영주들이나 상인들의 선박을 지켜주고 그 대가로 통행요금을 받았습니다.
무라카미 해적은 안전한 항해를 담보해줄 뿐만아니라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섬들을 물류거점으로 이용한 상인의 얼굴이며 우아하게 향, 차, 일본 전통정형시 '렌가'를 즐겨읊는 문화인사의 얼굴입니다. 그리고 세토내해에서 싱싱한 어패류를 잡는 어로산업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해산물들을 대담하게 조리하는 향토요리로 계승되어 있습니다.
해적에 연유된 사적지나 문화는 상상을 초월한 규모로 아직도 이 지역에 남아 있습니다. 오노미치와 이마바리를 이어주는 게이요제도에 가보면 아름다운 섬들의 바다경치와 함께 "일본최대의 해적"이라고 칭송된 무라카미 해적에 관한 기억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세토내해에 떠있는 게이요 제도를 다리로 잇는 "세토내해 시마나미 카이도" 그 "시마나미 카이도"에 있는 길이 70킬로의 사이클링 코스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해협을 횡단할 수 있는 자전거 길 입니다.
자연미가 넘치는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사이클링 코스를 가진 "시마나미 카이도"는 "사이클리스트의 성지"로 불리고 있으며 CNN의 "세계 7대 사이클링 코스"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각 섬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게이요 제도를 자전거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시마나미 카이도"에는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렌탈 사이클 터미널이나 쉴 수 있는 사이클 오아시스가 여러개 있어서 쉽게 사이클링을 즐길 수 있습니다."시마나미 카이도" 를 자전거로 돌아보면서 게이요 제도에 잠들어 있는 "무라카미 해적"의 역사를 접해보는건 어떨까요?